방구석 사색가 C Villain
다. '반취약성'과 '스키조프레니아'에 대하여 본문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었는가」는 여러 철학적 관점들에 대해 소개한 책이라 그런지 생각해 볼 문제가 많아서 몇 가지 더 생각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반취약성에 대하여」
'반취약성' : 외부의 혼란이나 압력에 오히려 성과가 상승하는 성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라는 미국의 작가이자 인식론자의 저서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반취약성'이라고 어렵게 말해놨는데, 나는 쉽게 생각해서 '전화위복'의 고급진 용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약간 의미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책에서 저자는 안전이 심화될수록 리스크는 더욱 커진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 '반취약성'을 말해준다.
거대한 기업과 사회는 시스템에 의한 분업화를 통해 효율적인 생산을 지향한다. 개인들은 거기에 맞추어 분업화된 능력을 갈고닦고 자신의 사회가 지향하는 능력을 심화하고 사회 내 인맥을 형성하면서 자신만의 '르상티망'을 실현한다. 이런 사회에 속해있는 개인들은 안정적이다.
그러나 이 구성원들은 그 사회를 벗어나 외부의 세계에 놓이게 되면 수십 년간 쌓아놓은 능력과 인맥의 가치가 떨어지게 된다. 기존의 사회에서만 유용하도록 특화된 것들이기에 상대적으로 외부에서 취약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얘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내 얘기이기 때문이다.
해군 생활을 하면서 얻었던 해군에 특화된 지식들. 어뢰를 운용하는 기술, 동해에서 적을 막는 작전계획 지식, 합동군과 연계한 훈련계획 작성 등. 밖에 나온 현재로서 제대로 써먹을 수가 없다. 심지어 군사 비밀이기에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사실들이다. 10년간의 직장에서 나온 나는 매우 취약한 상태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반취약성'에 대해 강조한다. 기술의 발전과 문화가 급변하는 사회일수록 대기업, 군대와 같은 시스템화 된 거대한 조직에서 개인은 취약해지기 마련이다. 많은 업체에서 '키오스크'의 등장은 많은 '아르바이트생'에 대한 필요성을 고민하게 만들고 있고, 인공지능의 발달은 언젠가 '정교하고 정확해야 하는' 모든 직업들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특히, '분업화'의 목적이 분야별로 정교하고 정확한 작업을 통해 효율을 올리기 위한 방책임을 생각할 때, 근미래에는 많은 사회의 일자리에 지각변동이 있을 것임을 책들을 읽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안정이 고착화되지 않는 이른 시기에 한 분야가 아니라 여러 분야에 경험을 쌓고 커뮤니티를 구축하고 스킬들을 올리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급변하는 사회에는 '반취약성'의 능력이 중요해지고 '제너럴리스트'는 '반취약성'에 적합한 인재상이 된 것이다.
「스키조프레니아에 대하여」
'스키조프레니아'라는 용어는 네이버에 치니까 '조현병'이라고 나오고, 책에서는 '분열증'의 뜻이라고 말해준다. 이 용어는 '질 들뢰즈'라는 포스트 구조주의 시대의 프랑스 철학자가 사용한 용어라고 한다. '잘 도망치는 사람들'을 가리켜 사용한 것이다.
직장에 우직하게 남아있지 않고 떠나는 사람. 배를 버리고 뛰어내리는 사람. 간 보다가 수틀리면 돌아서는 사람 등이 대표적인 이미지로 떠오른다. 우리나라로 치면 '박쥐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아니면 '줏대 없는 놈'? 이런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부정적이긴 하다.
그러나 저자는 급변하는 사회에서 '스키조프레니아'가 승리한다고 말해준다. '스키조프레니아'는 고정적인 '아이덴티티'에 속박되지 않고, 자신의 미의식이나 직감에 따라 자유롭게 운동하고 과거의 판단, 행동, 이미지에 집착하지 않는다. 언급했듯이 급변하는 사회는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고착화된 시스템은 변화에 더욱 취약해진다.
급변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예전 조상님들이 살던 고대 사회에 비해서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문제들을 더욱 빈번하게 마주하게 된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서 결심하지 못한 채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람보다 당연히 위험함을 직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생존확률이 높다는 판단은 합리적인 생각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축적형 이론 사고보다 대담한 직감이 중요하다'"라고 언급하며, 주변이 괜찮다고 해도 스스로 위험하다 느끼면 바로 도망치라고 한다. 사람들은 도망치는 사람을 겁쟁이라고 욕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도망칠 때 필요한 것은 '위험하다고 느끼는 민감도'와 '도망칠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용기가 있어야 도망칠 수 있다(공감한다.. 안정적인 수입의 포기는 결심이 필요했다).
여담이지만 내가 군을 나오게 된 계기도 이렇게 살다가는 바보가 될 것 같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안정적이지만 짜증 나는 매일이 펼쳐진 일상은 나를 계발하기보단 한 시간이라도 더 안락한 휴식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거기에 더해 개인의 발전을 통해 성취를 이룬 사람들과 진보하는 기술(인공지능, 가상현실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였기에, 더더욱 남아 있을 수 없었다(지금 하는 일을 10년 뒤에도 똑같이 하고 있을 것이란 확정적인 상상은 너무 괴롭다).
「입장 정리」
책을 읽다 보니 나는 '도망자'이지만 일단 위험을 느끼고 나왔다는 선택지는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떻게 '자유'를 책임질지는 별개의 문제지만. 하여튼 이번 책을 통해서는 지금 사회에는 '반취약성'에 강한 '제너럴리스트'와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는 '스키조프레니아'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야생에 던져진 상황으로 인해 아마도 책을 읽으면서 이런 글들에 대해 '확증편향'이 생겨 주목하게 되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다 던지고 나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따라 추구하는 지향점과 삶의 목적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직에 남아있다고 해서 겁쟁이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도 도전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다들 나오세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다만, 호기심이 많고 정체에 민감하신 분들이라면 이런 글들을 하나씩 읽어보시면서 준비를 하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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